One day One Writing

[2020.04.14]진짜 여름다운 여름

종은씨 2020. 4. 14. 12:50

작지만 내 마음대로 살아본 순간이 있나요

  Joe Hisaishi의 Summer를 우연찮게 들었다. 거장의 음악은 다른가 제목을 보고 들어서 그런가? 진짜 여름이 연상되고 꿈같은 여름날이란 단어가 생각나면서, 어린시절 여름중에 찬란했던 여름이 있었나 생각하게 되고 문득 돌아켜보았고, 정말 행복했던 나의 영화같은 여름 부끄럽지만 떠올랐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가 언제냐 라고 묻는다면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라고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중학생은 초등학교 티를 벗어난지 얼마되지 않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면서 여러 흑역사들이 만들어 지는 시기이고, 고등학생이 되면 어느 정도 육체와 정신의 균형을 이뤄나가는 타이밍인데 고등학교 3학년은 아닌 친구들도 많겠지만 사실 상 수능준비로 추억과 아름다움에서 제외되는 시기라고 본다. 그러다보니 고등학교 2학년은 거의 10대의 최고 연령층으로 공부든 다른 것이든 도전할 수 있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시기이며 사실상 고등학교에서 감독과 같은의 역할 이라고 할 수 있겠다. 10대를 통틀어 아이들의 정신적 지주가 될 수 있고, 대외활동을 활발히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아름다운 고등학교 2학년 나와 내 친구들은 성당에서 중,고등부를 대표하는 의장단으로 여러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매년 여름 방학시즌에 성가제라는 부산교구 전체의 성당이 부산 KBS홀에 모여 성가제를 하면서 서로가 길게는 3달 짧게는 2달정도를 1곡을 연습해 뮤지컬 방식이든 아카펠라방식이든 방식의 제한없이 선의의 대결을 펼친다. 이때 우리는 다른 성당과 연합하여 팀을 꾸리기로 성당 선생님들과 이야기하고 상대 의장단과 입 맞추고 같이 준비를 하였다. 서로의 성당에서 연습시간을 잡고 중,고등부를 다같이 인솔해서 이동하면서 서로 친분을 쌓고 연습하면서 추억을 쌓았다. 생각만 해도 재미있지 않겠는가? 또, 우리성당은 남성의 비율이 많고 반대의 성당은 여성의 비율이 높았다. 그리고 성당에서 활동한다고 하면, 부모님들도 흔쾌히 다녀오라고 하니 합법적으로 타지역의 친구들과 교제할 수있는 기회라니 지금 도 그 당시를 추억하기만 해도 흐믓해진다.

  그리고 그 당시 밴드를 구성하기로 하였는데 나도 여기서 무슨 역할을 하고 싶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서기도 싫어하고 음악이라고는 할줄 아는게 노래부르는 것 밖에 없었는데 친구들이 다뤄보지 않은 악기, 유일하게 선생님이 들어가기로 한 베이스라도 하고 싶어했다. 그리고는 강제로 내가 베이스를 사랑하는 것인 마냥 연기하고 매력에 빠진 것 처럼 정말 미친듯이 연습했던것 같다. 집에서도 빗자루를 잡고 연습하다가 도저히 안되겠어서 당시 밴드부 친구에게 중고로 베이스를 구매해서 집에서도 성당에서도 연습했다.

  나를 제외하고는 다들 악기를 꽤 다루던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연습때, 항상 틀려도 나 때문에 틀렸지만, 다른 친구들이 많이 도와주기도 하였다. 그래서 더 연습했지만, 베이스를 알려주던 선생님이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사실 완주는 가능하지만 밴드부가 아닌 합창단이 다보니 합창이 주가 되어야하고, 합창에 남자 테너가 부족했던 것을 지적하며, 노래로 들어오는 것을 요청했던 것, 다만, 내가 여름동안 해온 노력이 있는 것을 알기에 이렇게 해라고 하지는 못하고 내 눈치를 보며 부탁하던 선생님, 나는 내 개인의 욕심과 팀의 전체적인 밸런스를 위해 나의 욕심을 버려야 하는가 고민했다.

  이때로 지금 돌아간다면 내가 또 이런 결정을 했을까? 싶게도 이해할 수도 없는 결정이긴했다. 팀이든 뭐든 내가 하고싶은 베이스를 치고싶다고 선택한 것이다. 매우 이기적이더라도 너무 하고 싶다고 내가 표현한 것 사실 장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아름다웠던 추억의 순간에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해봤다는 것. 감히 오늘 주제에 어울리는 결정을 내려준것에 감사하고, 결전의 그날 나와 우리 팀은 최선을 다했고, 틀릴 친구는 틀리고 잘하는 친구는 잘했다. 사실 입상은 중요하지 않았다. 대회였고 선의의 경쟁이 있었지만 사실 우리 인생의 추억중 가장 여름에 걸맞는 활동을 하였고, 그날 나는 내가 베이시스트로 무대에 섰다는 것이 매우 중요할 뿐이었다.

  그게 벌써, 16년 전의 일이다. 그 사이 나는 베이스를 팔았고, 짧지만 굵은 베이시스트의 열정은 그 해 여름 부모님께 나 음악하고 싶다고 해봤다가 집안사정상 시켜줄 수 없다는 대답을 듣고 더 반항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인생가장 아름다운 여름에 열정적이 었던 베이시스트의 꿈을 쉽게 포기해버렸다. 그렇게 내가 내 욕심을 부릴 줄 몰랐는데 생각하면 지금도 이해가 안되는 결정이긴 했다. 지금은 베이스를 보면 어떻게 쳐야하는지 다 까먹어 버렸다. 그래도 내가 유일하게 욕심을 가지고 선택했던 여름날의 추억이 자랑스럽다.